불교서적 - 아난존자의 일기

옛 궁전에서 기다리다

공부하는아이 2024. 11. 8. 17:02

"아난다여! 너의 형이 우리에게 오기는 올 것인가?......."

왕궁에 인사드리러 갈 때마다 백부인 대왕께서는 이런 질문으로 맞이하였다. 형님의 부왕께서는 연세가 많아 늙으셨다. 대왕은 굳센 마음으로 나라를 책임지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 늙어 가면서 점점 마음이 약해지셨다.

그분이 자랑스러워하고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픈 마음과 아들을 향한 사랑이 힘겨루기를 한다.

아들이 추구하는 그 높은 목표를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이 언제나 승리를 차지했다. 아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그의 목적이 빨리 이루어지이다'라고 발원하였다. 이 사랑에섯 나온 발원으로 자기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다잡을 수 있었다.

부왕의 그 지극한 축원은 이루어졌다. 아들의 그 높은 목적은 자랑스럽게도 성공했다. 견문과 지혜가 성숙한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시간이 지나자 크나큰 공덕을 지니고 있다는 소식이 퍼져갔다. 이렇게 모든 곳에서 자기 종족으이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자랑스러운 큰아들이지만 그를 생각할 때마다 부왕의 마음에서는 점점 힘이 없어져 갔다. 마음으로 받쳐 주던 몸이 주춤주춤 흔들거렸다.

"그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 그와 같이 할 사람들 중에 우리 종족은 들지 않은 것 같구나......."

젖을 먹여 길렀던 어머니 마하 빠자빠띠 고다미께서도 슬픈 소리로 중얼거리셨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공덕으로 온 세상에 법의 큰북을 울리시지만 유독 까삘라만은 비켜가는 것이다. 사승동산에서 안거하실 때에는 안거가 끝나는 해제 때에는 오시겠지 하고 생각했다.

 

죽림정사가 생겨났다. 까삘라에서는 먼 거리였다. 죽림정사에서 두 번째 안거가 끝났지만 까삘라에 대해서는 말씀조차 없으셨다. 흔들림 없는 공덕의 주인이야 무심히 지내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부왕과 왕비께서는 견디지 못하셨다.

그분들 같은 노인이 참을 수 있는 단계는 지나갔다. 그래서 부처님, 그 거룩하신 분을 모셔 오도록 대산 한 사람과 호위병사 일천 명을 보냈다.

그러나 대신은 가는 길은 알아도 돌아오는 길은 기억나지 않는가 보다. 부처님을 모시러 떠난 어느 누구, 어느 한 사람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부처님께 가서 그분의 법문을 듣고는 아라한의 높은 성인이 되었으며, 세상사람들의 일과 왕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기를 아홉 차례나 보냈지만 부왕과 왕비의 뜻을 그분의 귀에 들리도록 여쭌 사람조차 없었다. 아흔이 넘어선 대왕께서는 몸과 마음에 힘이 없어졌다.

육십 가까운 나이에 늦게 얻은 아들, 그래도 어느 한 구석 밉게 생겼거나 말썽 한번 부리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그 자랑스러운 아들이 늙은 부모와 처자식을 버리고 자기 소원을 위해서 갔다. 그것까지도 참을 수 있다.

소원을 이루었으면 제일 먼저 돌아와서 그 공덕을 자랑해도 좋지 않은가. 어째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면서도 이곳은 오지 않는가?.......

처음 태어났을 때 어미 없는 자식이라고 얼마나 정성을 쏟았던가? 내가 어디 다른 부모만큼 못하기나 했던가! 철 따라 불편 없으라고 궁전을 지어 주고, 늙은이와 병든 이들이 눈에 뜨이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세심하게 정성을 쏟았던가!

혹시 이 세상에 대해 싫증이라도 낼까봐 왕궁에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로 가득 채우지 않았던가. 처음 태어나서 선인들이 아들의 운명에 대해, 이 세상을 전쟁이나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을 때 온 사까족 모두가 그를 얼마나 아꼈던가?

이제 전륜성왕은 그만두고 이 세상에 더 없는 큰 지혜를 깨달았으면, 그래도 이 늙은 부모에게 한 번쯤은 와야 하지 않는가? 지난 육 년 동안 그 힘든 고행을 할 때 이 아비의 자리는 가시덤불이 아니었더냐?

더러는 누군가 나에게 와서 죽었다고 했을 때, '그럴 리가 없다. 복과 지혜를 갖춘 내 아들이 자기의 소원을 이루지 않고는 절대로 죽을 리가 없다.'라고 믿어 주지 않았던가. 그 장한 아들을 보고 싶어하는 늙은 부모의 심정을 영 잊은 것은 아닌가?

몸과 마음에 기운이 없으신 대왕께 마지막 남은 희망을 여쭈어야 했다.

"기운 차리십시오, 백부님. 그분에게 보낼 마지막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깔루다이입니다. 그는 형님 부처님과 매우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습니까? 형님 부처님께서 꼭 오시도록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대신 깔루다이는 왕궁 안에서 책임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싯달타 태자와는 어린 시절 함께 흙장난하던 친구였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아들과 가까웠던 것이 계기가 되어 숟도다나 대왕의 오른팔이 되었다. 왕궁 안팎의 모든 일을 마음 놓고 의논할 수 있는 왕의 고문이 되었다.

"깔루다이 대신을 보내면 왕궁의 일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아난다야, 왕궁 안의 모든 일들을 그만이 빈틈없이 준비하고 처리해낸다. 그러나 그를 보내지 않는다면 다시는 아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 깔루다이를 불러라."

대왕의 명령에 따라 대신 깔루다이가 대령했다. 깔루다이의 얼굴을 보지 일찍부터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알고 기대해온 것 같았다. 대왕의 명령을 받고 가는 것보다 스스로 마음속의 바람으로 기쁘게 가고 싶어하는 것이 더 많아 보였다. 깔루다이는 숟도다나 대왕의 명령을 공손히 듣고 나서 말씀드렸다.

"대왕이시여, 시키는 대로 책임을 완수하면 저에게 한 가지 상을 내려 주십시오."

나는 깔루다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눈길은 숟도다나 대왕에게 향해 있으며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대왕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귀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왕궁 안에 그가 없으면 안 되므로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말라고 내가 말씀드리려는 순간 대왕께서 먼저 입을 여셨다.

"아들을 보고 싶다. 깔루다이, 다른 일은 마음대로 하라."

"기쁩니다. 대왕님. 제가 원하는 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앞에 도착했을 때 비구가 되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 역시 앞서 간 사람들을 따라 가는구나!..... 그러나 이미 그러한 생각을 짐작하신 백부님은 동요하지 않으셨다.

"아들을 스승으로 삼고 비구가 되는 일, 내가 나의 이익을 위해서 집착하여서 막지 않겠다. 깔루다이야, 그러나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여쭈어 주거라."

"안심하고 계십시오."

호위 병사 무리를 이끌고 깔루다이가 떠나갔다.

깔루다이가 안심하라는 말은 그의 능력을 자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숟도다나 대왕도 그의 능력과 용기를 믿고서 왕궁의 첫 번째 대신으로 삼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들을 보고 싶은 생각만이 너무나 커서 그의 능력조차 의심이 되었다.

그렇게 마지막 희망을 걸로 깔루다이가 떠나간 다음 그 보고 싶은 아드님이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지냈다.

 

라훌라의 어머니 야소다라는 어른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다행이었다. 싯달타 태자가 떠나갔을 당시에는 그리움과 뜨거운 번뇌 두 가지를 모두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이 아픔의 형벌도 부모님과 어른들의 연민심과 친척들의 자비에 의해 조금씩 치료되어 갔다. 지금 그 어린 아들 라훌라가 일곱 살이 되었다.

그 아들의 몸은 어머니 품에서 안온하게 잘 자랐다. 그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서 깨끗하고 밝았다. 그 아기의 얼굴을 보며 어머니는 위한을 삼았다.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 아기는 탈 없이 무엇이나 잘 먹고, 무럭무럭 잘 자랐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갖가지 먹을 것을 청하고 말을 배웠다. 사랑스러운 아기의 노는 소리를 들으면서 야소다라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했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빠뜨릴 수는 없다. 부모님들과 어른들은 아들이 올 것인가 하고 걱정이 많다.

야소다라는 생각했다. 남편은 생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이른 사람, 그러나 왕자 시절을 잊고 지낼 수 없으리라. 그때 그분에게 향했던 살뜰한 나의 정성과 사랑을, 몸과 입과 마음으로 쏟은 그 정성들을 그분께서는 생각하실 것이다. 그 공덕과 은혜로 어느 시간에는 뵐 수 있는 기회를 주리라.

자기의 공덕과 그분을 똑같이 존중하고 믿는 한 여자의 생각이었다. 그 해 4월 보름, 그 여자의 생각이 맞는지 안 맞는지 밝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