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지 참는 아이
이 이야기는 본인의 이야기다.
나는 경제적으로 안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 그러다보니 항상 부모님은 경제문제로 파생된 여러가지로 부부싸움이 잦았다. 어릴 때 자다말고 친척집으로 도망친 적도 많았고, 하다하다 여관으로 도망친 적도 있었다. 나는 형제자매도 없어서 누구와 힘든 점을 털어놓거나 공유해보지도 못했다. 특별한 재능도 없어서 할 수 있는 건 공부 밖에 없었고, 중학교 때부터는 반에서나 전교에서 높은 성적을 유지했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불화는 점점더 심해질 뿐이었고 심지어 고3때 이사를 3번이나 다니다보니 성적은 곤두박질을 쳐서, 학년초 모의고사 성적으로 서강대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이었는데, 결국 지방대까지 밀려났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거기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전액장학금을 졸업때까지 놓치지 않았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도 중견기업에 들어가게 되어 월급의 일부를 생활비로 드리고도 적금을 들어 만기때에는 2천만원이 넘는 돈을 손에 쥐게 되어 부모님이 월세로 사시던 아파트를 매매로 사시도록 보태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부모님과의 삶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직장에서는 열심히 하는 모습에 인정받아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직장에서는 인정을 받아 점점 승진도 하지만, 부모님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보니 내 삶의 미래가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우연히 한 스님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서 인생의 병이라는 개념과 인생치유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나에게는 무엇이든지 참는 병이 있고, 막연한 열등감이 있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심각한 부부싸움의 환경에서 부모님의 기분에 따라 내 생각을 말할 수 없게 되었고, 특히 엄마는 무학이어서 본인의 이름조차 잘 쓰지 못할 정도였는데 그것을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숨기고 있었고 내게는 죽을 때까지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세뇌교육을 일삼아 엄마의 열등감이 심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를 만나도 내 의견을 말하지 못했고, 나는 그들보다 못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도 친구들이 먹고싶은 음식을 먹고 친구들이 가고 싶은 데에 가고 친구들이 만나고 싶은 장소에서 만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이 나는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가 상당히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일을 하거나 때로는 내 의견을 강하게 주장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러지 못하여 더욱 발전하지 못하고 내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계속 이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부모님은 나에게 업히고 나는 그런 부모를 업다보니 항상 무거운 짐처럼 느껴져서 힘든 삶을 살게 되고 결혼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보다는 내 부모님을 같이 모셔줄 사람을 찾은 것 같다.
그런 내 인생을 들여다보니 그렇게 살고 있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참으로 불쌍하고 비참했다. 그래서 치유를 했고, 이제는 나처럼 인생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고 살게 할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인생의 병은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에 받은 상처로 인해 나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못 살게 된 것이며, 그 상처는 스스로는 도저히 고치지 못하고 그렇게 평생을 아프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안 아프게 사는 법을 전하면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