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황사 방모다

군맹서진스님

공부하는아이 2025. 2. 27. 15:12

군맹서진스님은 서울 수유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 같은 곳에서 살다가 조계종으로 출가하여 통도사와 범어사를 거쳐 군대를 제대한 후, 일본 동붕대학교 불교학과를 다니면서 살아있는 석가모니부처님이라고 칭해지는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4년 내내 학교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대학교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려고 했으나, 선친이신 효란큰스님의 말씀에 감명받아 귀국을 결심한다. 돌아오자마자 서울 수유리에 있는 서원사와 경기도 연천에 있는 오봉사의 주지에 임명되었고, 오봉사는 효란큰스님께서 계시고 서울 서원사에 있으면서 불법을 펼쳤다.
사실, 출가하게 된 것은 선친의 강요였으나 제대로 불교를 알아보고자 일본 유학에 올랐고, 치열하게 불법을 알아내고자 4년 내내 불법에 파고들어 이론적으로는 불교가 어떤 가르침인지 알아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이미 망가진 한국불교 대신에 정법을 펼치고자 민중 속으로 뛰어들었다. 장사가 안 되어 고통받는 신도들의 가게에서 직접 일하면서 문제점을 찾아내어 해결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하루 4번 2시간씩 정근(일반적으로 사찰에서 하는 기도법)하기를 1000일동안 하기도 하고, 점집에 가는 심정으로 찾아온 사람에게 기도를 시키기도 하면서 현대사회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불교를 전하려고 애를 쓰던 중, 업장(업의 장애, 즉 인생의 병)이 있는 사람은 제대로 된 신앙을 하더라도 원하는 환경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매달 잡지를 만들어 전국의 사찰에 무료배포를 하자 전국에서 많은 스님들이 서진스님을 만나러 찾아오고 의정부교도소와 강북경찰서 불교모임에도 법문을 하러 다니고, 강북구 사찰모임의 총무로 오랫동안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 보니 일반인들 중에서도 서진스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많은 사람이 서원사에 방문한다. 그러던 중, 선무도 사범이던 이원일씨가 제자로 들어와 종교를 믿지 않는 젊은 사람들에게 불교를 전하고자 새로운 시도를 하던 중, 불교의 수행법을 이용하여 업장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다. 이원일씨에게 선무도를 배웠던 사람들 중에서 삶이 힘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힘든 문제를 해결하면서 차근차근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사람들의 소개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서원사에 찾아들었다.
그러다가 부모 형제들과의 불화로, 서진스님은 연천의 오봉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사람들을 통해 소개받아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다가 거리상의 문제로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고, 서진스님을 따르던 스님들과 포교활동을 하던 이원일씨마저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불교를 널리 펼치고자 하는 열정은 식지 않았고, 서울에서 인생강좌를 열고 매주 수요일마다 하던 경전강좌는 서울에 있는 문화센터를 임대하여 지속하였다. 그런 활동을 통해 서진스님을 따르던 신도들은 더욱 믿음이 굳어갔고, 그 신도들도 발 벗고 포교활동을 거들어주었다. 하지만, 새로운 신도는 유입되지 않는 세월을 오랫동안 지속하다보니 굳건했던 신도들도 하나둘씩 떠나고 10명정도가 남았을 때 가장 가까이 있던 제자스님의 배신으로 남은 신도들마저 다 떠나고 한 부부만 남게 된다.
신도가 10명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서진스님은 의절하고 지내던 어머니를 찾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자 서울에 포교당을 차릴 수 있을 정도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강남 3구를 모두 수색하여 2000여곳 중 단 세 곳에서 포교당을 차릴 수 있게 허락해서 그중에서 제일 나은 곳에 포교당을 차리게 된다. 포교당 자리로 허락된 곳이, 하나는 붕괴 직전의 건물의 맨 위층이었고, 또 하나는 교회가 있는 건물의 지하층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터널공사장 바로 옆 2층이어서 입구가 건물 뒤편에 있는 곳이었다. 그 셋 중에서 서진스님은 터널공사장 옆 건물로 선택했고, 공사가 끝나면 깨끗해지고 입구도 건물 앞쪽으로 드나들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공사가 끝나도 입구는 여전히 뒤쪽으로 다녀야만 했다. 알고보니 옆 건물주 소유의 땅을 침범하여 오랫동안 소송 중이고, 앞쪽 출입구가 옆 건물주 소유의 땅이어서 출입할 수 었는 것이었다. 게다가 땅 소유주쪽에서 소송서류를 보내면서 퇴거를 하라는 종용이 계속 있었다. 그렇게 2년 여를 보내다가 해당 건물주로부터 갑자기 이전하라고 하여, 주변에 있는 중개소에 의뢰하여 적당한 곳을 찾던 중 매물로 내놓지도 않은 비어있는 사무실을 우연히 발견하여 찾아가 보니, 전철역에서도 더 가깝고 꼭대기층 전체를 쓸 수 있어서 다른 점포에게 방해받지도 않은 데다가 그쪽 건물주는 불교신자여서 더욱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이전하라는 통지를 받고 2달만에 더욱 넓은 곳으로 이전하여 지금까지 포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