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황사 방모다

나의 방모 트레이닝 과정들

공부하는아이 2025. 4. 10. 17:23

나는 지금까지 인생치유프로그램 과정을 여러 번 했다.

그 이유는 맨 처음에는 심정지 때문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멈춰져서 사마타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시도했으나 너무 바쁘기도 했고 체력적으로도 사마타를 할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가족이다 보니까 소홀했던 점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장애물이 생길 때마다 시도했는데, 그 때마다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었고 조금씩 방모로서의 자질이 갖춰지기는 했다.

 

'방모'란 절 방(坊)자에 어미 모(母)를 써서 스님의 부인을 말하는데, 일본의 스님 부인을 보모리(坊守 )라고 한 것에서 착안하여 군맹서진스님이 새로 만든 단어다. 따라서 군맹서진스님은 방모란 모든 신도들의 어머니로서 그들의 아픈 인생을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사실 일본의 절은 대물림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시어머니 또는 어머니가 하시는 것을 보고 며느리와 딸이 저절로 방모의 자질을 갖추게 되는데, 한국의 절은 일본과 같은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방모가 무슨 말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할지 전혀 알 수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고 배울 데도 없다.

 

게다가 나는 형제자매도 없이 태어나 부부싸움만 일삼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인지, 타인과 겉으로 지내는 것은 어느 정도 괜찮은데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루만져주고 그들의 안심처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실제로 내 어머니는 내게 의지가 되기는 커녕 나를 방패막이로 삼아 나는 고아나 다름없는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막연하게 자식을 보듬어주고 지켜줘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의지가 되는 것인지도 몰랐고 또 뭘 어떻게 해야 그런 상태가 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오봉사(태황사 전신)로 이전하고 나서는 심정지의 후유증도 있었던 데다가 많은 스님들과 많은 신도들에 둘러싸여 24시간 전쟁 속을 살아야 했다. 남편도 전처와의 사별과 부모형제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나를 돌봐줄 여력도 없었고 오히려 나를 공격하는 가장 가까운 적이 되었다. 

 

그렇게 힘든 세월을 보내던 중, 큰딸이 스님이 되어 태황사의 총무스님이 되었고, 부처님의 명을 받아 방모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맨처음에는 남편과 나를 100일동안 따로 살게 하여, 남편에게는 더이상 내게 전처의 그림자를 씌우지 못하게 하면서 본인에게도 업장이 있음을 돌아보게 했고, 나에게는 그동안 방훈방모님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굴레를 벗어나게 하는 몇 가지 미션이 주어졌다. 

 

여기에서 또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내가 심정지가 와서 쓰러졌을 때, 사실 나는 그때 죽을 목숨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방훈방모님이 대한병원 응급실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그 자리로 들어오자, 부처님께 부탁을 했다고 한다. 애들이 자랄 때까지만 이 사람 몸에서 살게 해달라고. 그래서 내가 의식이 돌아왔을 때 마치 죽었다가 살아나 딸을 본 것처럼 큰딸을 보며 알 수 없는 울음이 나왔던 것이고, 그때부터 내 한 몸에 두 사람의 혼이 동거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나와 방훈방모님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방훈방모님은 절집 딸로 태어나 방모의 자질을 갖출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본래의 성격도 아주 따뜻한 데다가 본인보다는 타인을 더 챙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형제자매도 없이 혼자 자라서 철저히 이기적이고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으려고 항상 벽을 치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방훈방모님은 항상 덜렁거리고 돈의 개념도 없는 사람이었던 반면, 나는 항상 메모를 하면서 일을 진행하고 돈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전혀 다른 두 사람의 혼이 동거하게 된 이후, 나는 아주 여러 번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심정지 때문에 내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깨어난 이후부터 내게 방훈방모님의 혼이 함께 살고 있다고 하니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2023년

우리 절에서는 새해가 되면 신도들이 모여서 사마타를 하는 이벤트가 있다. 1박2일동안 부처님께 '나의 올 한해는 어떻겠습니까?'라는 주제로 3번의 사마타를 하는 것이다. 그때 나도 사마타를 했는데, 어떤 신도가 너무 큰 소리로 염불을 해서 도저히 방해되어 할 수 없게 됐고, 그 수련회가 끝나고 나중에 혼자 사마타를 했다. 그 내용은 내가 올 가을에 죽을 것이고 사인은 의료사고이며 그  과정도 상세하게 나왔다. 

그러자 남편은 큰딸에게도 사마타를 하게 했다. 진짜인지 확인하려고.

 

큰딸이 사마타를 하자, 내가 죽는 것은 사실인데 그 이유는 좀 달랐다. 그동안 내 몸에 함께 살고 있던 방훈방모님이 부처님과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돌아가게 되었고 그때 나도 같이 죽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과 큰딸은 또다시 사별의 아픔을 겪고 싶지 않다고 부처님께 빌었고, 어떻게 하면 죽지 않느냐고 여쭈었다.

 

내게 세 가지 미션이 주어졌다. 하나는 이천만원을 보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떤 점쟁이집에 가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매일 사마타를 하면서 생각나는 것을 참지 않고 행하는 것이었다.

 

보시는 삼륜청정의 보시를 해야 하는데, 보시를 하는 자와 보시를 받는 자 그리고 보시물 이 세 가지가 청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보시를 하는 자는 보시를 했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고 보시를 받는 자는 받았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고 보시를 한 댓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우리 절에 보시를 하면 내가 받는 격이니 보시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어떻게 보시를 해야 하는지 여쭤보니 불에 태우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면 과연 진짜 청정해진다는 것은 납득이 됐지만, 그렇게 큰 돈을 과연 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 망설여졌다. 그러자 남편이 '당신이 죽는다는데 이천만원이 아니라 이억 이십억이어도 해야지'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고, 남편과 함께 가사와 장삼을 입고 경건하게 의식을 치렀다.

그리고 두번째 미션은, 어느 잡지에서 유명한 법사라고 하면서 기사가 난 것이 떠올라 그곳을 찾아갔다. 가사와 장삼을 들고 그 집에 갔더니 젊은 남자가 나오면서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태황사로 돌아왔는데, 아무래도 거짓말인 것 같았다. 그 법사는 '육임'이라는 점을 치는데, 그것은 누가 언제 어떤 고민을 가지고 찾아오고 어떤 답을 해야 좋아하는지를 점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미 알고 거짓말을 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번째 미션은, 큰딸이 라이프너즈 역할을 해주었고 주지스님의 점검으로 끝까지 마쳤다.

 

그리고 2025년.

큰딸은 불교공부를 위해 작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주지스님의 모교로.

 

방학 때마다 한국에 와서 지냈는데, 지난 겨울방학 때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내게도 '우는 아이'가 보인다고 하여 또다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방훈방모님의 혼이 내 몸에 동거할 때 '우는 아이'가 들어왔다가 남아있는 것이라고 밝혀졌다. 

2024년 1년동안 큰딸이 둘째와 셋째의 '우는아이' 퇴치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나도 꽤 오랫동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1주일정도 밖에 안 걸렸고, 다나바라밀도 순조롭게 끝나고 지금은 이렇게 책을 준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