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황사 방모다

지금 참종사와 태황사에 오시는 분들

공부하는아이 2025. 5. 30. 14:14

작년에 100일기도가 끝나갈 때, 열흘을 앞두고 오신 염광스님은 사실 주지스님과는 오랜 인연이 있다.

 

예전 서원사 시절에 오랫동안 서원사 사무장으로 계시면서 주지스님의 그림자처럼 함께 하셨던 분이다. 지금 내가 그러는 것처럼. 주지스님도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그때도 성황했던 때도 있었고 직원들 급여를 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도 있었는데, 그 모든 세월을 함께 하셨다고 한다.

 

염광스님의 아버지 유골이 태황사 납골당에 모셔져 있어서 1년에 1~2번은 꼭 찾아오셨는데, 그때마다 주지스님이 안 계신 틈을 타서 방문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 정도를 보내다가 작년에 우연히 100일기도 중에 방문했는데, 그때 정진 중이셨던 보광스님이 이렇게 먼 길을 오셨으니 주지스님을 뵙고 가라는 말에 만류하지 못하고 주지스님을 기다리고 계셨다. 주지스님은 처음에 탐탁치 않게 여기시면서 담소를 시작하였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예전과는 변해있는 모습을 발견하셨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조만간 태황사로 오라는 말씀을 하시고 보내셨다.

그런데, 갑자기 보광스님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당장 하루에 3번 정진을 해야 하는에, 큰 일이 나게 된 것이다. 주지스님이 투입되었으나, 서울 참종사에도 가셔야 하니 천념스님 혼자 12시간을 정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주지스님은 염광스님에게 당장 올라오시라고 하셨고 그렇게 열흘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지금은 태황사에 총무스님으로 계신다.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법회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약 2년반동안 있었다. 처음에는 매일 12일간 하고 바로 봉안하려고 했으나 주지스님의 사마타에서 친견법회를 계속 하라는 말씀이 있어서 월 1회 1년 넘게 지속하다가 2021년 10월31일에 봉안식을 한다고 유튜브에 큰 홍보를 해놨다. 그런데 봉안식 이틀 전에 갑자기 사고가 났다. 

봉안식을 하려고 오색 리본을 사리탑에 드리워 놨는데, 그것이 바람에 날리면서 오색리본을 달아놓은 사리탑 일부가 떨어진 것이다. 무거운 돌덩이를 날릴 정도로 바람이 쎘다. 그래서 부랴부랴 사리탑 제작자에게 연락을 해서 재제작을 의뢰했고 그렇게 된 김에 디자인을 교체하여, 사리를 모신 종모양의 꼭대기에 꽃봉오리 모양을 오봉사의 봉(鳳)자에 착안하여 봉황으로 교체됐다. 그렇게 3주후인 11월21일에 봉안식을 거행했고 이때 사부대중을 뜻하는 비구스님 비구니스님 남자신도 여자신도 대표 4명이 진신사리를 이동하는 가마를 들었다.

2019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전국 불교신도들은 석가모니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하고자 수백명이 몰려왔다. 한 번만 방문하신 분도 계시지만 아주 여러 번 방문하신 분들도 계신다. 오전에 법회를 하고 점심공양 후에 차담이 이어졌는데, 그때 신도들은 법문에서 듣지 못하는 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주지스님은 흔쾌히 답변을 해주셨고 모두들 신심이 가득해져 돌아가곤 했다. 그들 중에 업장이 보이는 분들에게는 업장소멸프로그램을 권유했고, 많은 분들이 업장소멸프로그램에 참여하여 100여명이 업장을 소멸하셨다. 

그 중에 지금도 남아계시는 분들이 10여명 계신다.

 

지금 신도회장을 하고 계시는 형금 불자님, 신도회 총무를 하고 계시는 불멸 불자님, 부산에서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오시는 입독 불자님, 친견법회 때 업장소멸을 소원하시고 큰 시주를 하신 위오 불자님, 친견법회 때 자매가 함께 오셨던 숭자 불자님과 별모 불자님, 불사회 회장을 하고 계시는 막퇴 거사님과 불사회 총무를 하고 계시는 어황 거사님. 이 분들은 친견법회의 인연으로 업장소멸프로그램을 하시고 주지스님께 법명을 받아 지금도 사비다에 정진하고 계시는 불자님들이다.

 

형금 불자님은 큰 어려움이나 고민이 없어서 처음에 친견법회만 참가하시고 업장소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셨는데, 주지스님의 권유로 시작하여 불자님 당신의 업장은 발견되었으나 딱히 큰 장애가 없으셔서 그냥 주지스님의 법문이 좋고 맞는 말씀을 하신다는 생각에 사비다를 꾸준히 하고 계셨다. 그러다가 둘째 아드님과의 불화가 생겨 그 문제를 풀기 위한 미션이 나왔는데, 부처님께서 주신 방법이 아닌 본인의 방식으로 수행하셔서 근본적인 해결되지 않았지만 꾸준히 사비다를 하시면서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멸 불자님은 자녀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문제로 업장소멸프로그램을 시작하셨는데, 남편분이 본인의 집안을 업고 있다 보니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았고, 그런 환경에서 자녀들을 키우다 보니 자녀들이 결혼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심어져서 결혼을 안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남편분이 업장소멸프로그램을 하거나 주지스님의 법문을 자주 들으면서 남편분의 업장을 소멸해야 하는데, 불자님의 업장이 소멸되다 보니 남편분을 오히려 더 멀리 하게 되었다. 그래도 꾸준히 사비다를 하시면서 본인의 상태를 업그레이드 하시는 중이다.

입독 불자님은 처음에 남편분과의 불화로 업장소멸프로그램을 시작하셨는데, 불자님의 업장은 홀로서기를 못하는 데다가 남편분은 본인의 집안을 업고 있어 부인을 보호하지 못하다 보니 불자님은 남편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여 본인에게는 관심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프로그램으로 그 업장은 완벽하게 소멸되어 지금은 남편분에 대한 불편함이 없어졌다. 그러다가 어떤 오해로 태황사에 발을 끊었다가, 나와 서명스님이 다른 일로 부산으로 출장가게 됐고, 간 김에 입독 불자님을 만났는데 이때 그 불자님의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아드님이 군대 제대 후 은둔형 외톨이로 5년 동안이나 가족들과 눈도 안 마주치고 컴퓨터게임만 하고 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프로그램을 다시 하셨고 아드님이 그렇게 된 이유는, 남편분의 업장으로 인해 불자님은 아드님에게 업히게 됐다는 것이다. 불자님이 치유가 되자 신기하게도 아드님이 박차고 일어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공무원시험을 위해 학원을 등록하게 되었다. 지금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구청에 출근한다고 한다.

친견법회 때 업장소멸을 소원했던 위오불자님은 큰 시주를 하고 나서 업장소멸프로그램을 시작하셨다. 불자님 아버지의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본인을 자학하게 되었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집으로부터 독립해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독립해서 혼자 살면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자학하고 있어서 자신을 해하는 습관을 고쳐야 했다. 그래서 나온 미션이 본인의 업장소멸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것이었는데, 도저히 시작도 못했다. 그래서 다시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니, 그 습관을 고치도록 교정해야 했고 지금은 자신의 삶을 더욱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교정을 계속하고 있다.

숭자 불자님과 별모 불자님은 어머니의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업장이 생긴 경우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아무래도 장녀인 숭자 불자님의 어머니로 인한 영향이 더 크다보니 기간이 훨씬 오래 걸렸고 업장의 성격상 치유가 까다로운 상태다. 그래도 사비다의 끈을 놓지 않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계신다. 그리고 별모 불자님은 본인의 업장을 충분히 납득하고 지금의 경제적인 어려움의 원인이 업장에서 온다는 사실을 극복해보려고 사비다를 열심히 하고 계신다.

막퇴 거사님은 친견법회를 통해 오신 것은 아니고, 처음 방배동에 불교대학을 열었을 때 직접 찾아오신 분이다. 불교대학 근처의 아파트에 살고 계시다보니 오고가면서 망설이다가 퇴근할 때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보고 들어오신 것이다. 정형외과 의사여서 늦게까지 진료를 하고 퇴근할 때면 녹초가 되어 강의조차 들을 수 없는 상태이지만, 그래도 한 번 가보자는 심정으로 들어오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강의도 듣는 둥 마는 둥 졸기 일쑤였고, 주지스님께서 여러 번 업장소멸을 권했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셨다. 그러다가 사기를 당할 위기가 되자 급한 마음에 업장소멸프로그램을 진행하시면서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시로 불교대학에 들러 주지스님의 조언을 구했다. 거사님의 업장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고 허세좋게 덤벼들었다가 약간의 위기가 오면 물러서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남양주 다산에 신도시가 생기면서 건물 3개층을 쓰는 조건으로 보증금과 1년간의 월세를 대납해준다는 말에 시작하셨으나, 꼼꼼히 계산했더라면 그게 다가 아니라 인테리어 비용과 초기 비용은 본인의 몫이며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는 손익분기점이 언제 올지에 따라 보증금과 1년의 월세를 합친 금액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아셨을 텐데 그런 부분이 부족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수시로 주지스님의 조언이 필요했고 업장소멸과 함께 물러서지 말라는 막퇴라는 법명을 받으셨다. 지금은 친견법회 때 부처님께 올린 소원인 "명의", 의사를 가르치는 의사가 되기 위해 몰두하고 계신다.

어황 거사님은, 불교를 만나게 된 인연이 특이하신 분이다. 두 딸과 한 아들을 두셨는데 자녀분 모두 어릴 때부터 똘똘하였다. 그중 장녀는 어릴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고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어와 수학 모든 대회에서 대상을 휩쓸고 다녔고 이화여대에 수석 입학 및 수석 졸업을 할 정도로 영재였다. 그리고 대학 졸업 즈음에 하버드대학에 입학허가서를 넣었는데 거기에도 합격을 했으나 경제적인 여건이 유학을 보낼 정도는 아니어서 입학은 포기했다고 한다. 그럴 때, 그 딸이 출가하고 싶다고 했고 거사님은 출가를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충격으로 거사님은 도대체 불교가 뭐길래 그렇게 출중했던 딸이 출가까지 하려고 했을까를 알아보려고 불교에 입문하셨다고 한다. 전국 유명한 사찰은 다 다니시고 유명한 스님도 다 찾아다니시고 모임에도 열심히 참가하고 철야기도도 수시로 했으나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친견법회를 한다고 하여 태황사에 와서 주지스님의 법문을 듣고 다른 스님들과는 독특한 말씀을 듣다 보니 매료되었고 업장소멸프로그램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자 왜 큰딸이 출가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불교와 연을 맺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어황 거사님은 전생에 큰 스님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행에는 관심없고 주색잡기에 빠져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뱀으로 환생하여 작은 뱀이 조금더큰 뱀에게 잡혀먹혀 또 뱀으로 태어나고 더 큰 뱀에게 잡혀 먹혀 또 뱀으로 태어나기를 매우 오랫동안 지속하다가 그 업보가 다하여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딸은 관세음보살의 현신으로 거사님을 제대로 된 불교와 연을 맺도록 하기 위해 인도하고 죽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딸의 위패를 태황사에 모시고 본인은 사찰 순례를 그만 두고 태황사의 불사회 총무가 되었다.

 

지금 사비다를 하고 계시는 분들 중에, 처음 업장소멸프로그램이 생기고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오시는 두 분이 계신다. 능정 거사님과 영조 불자님이다. 이 두 분은 부부이며, 많은 신도들이 오셨다가 떨어져 나갈 때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신 분들이다. 방배동에 처음 불교대학을 열었을 때 단 두 분만 수요교리에 참석하셨고, 주지스님이 어떻게든 불교대학을 살려보고자 고군분투하실 때 회의도 같이 해주시고 많은 아이디어도 내주신 것도 두 분이었다. 맨 처음에 주지스님과 인연이 된 것은 각비스님에게 선무도를 배웠던 영조 불자님이 각비스님의 권유로 불교강의와 프로그램을 하게 된 것이었다. 영조 불자님은 중학교 선생님이신데, 지금도 기억나는데 굉장히 앳된 모습이셨다.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니, 거사님과는 대학 1학년때 사귀기 시작하여 결혼까지 한 것인데 아직까지 대학커플의 상태였다고 한다. 즉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이 그 분의 업장이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부인의 바뀌는 모습을 보고, 도대체 뭘 했기에 이렇게 바뀌었는지 궁금해서 능정거사님도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능정 거사님 역시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였다. 부부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니 좋은 것은 서로 시너지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느슨해지면 다른 한 사람의 자극을 받아 다시 신앙심을 일으키면서 서로서로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 두 분도 여러 번의 업그레이드가 있었는데, 우선 청소년의 상태가 어른이 되고 그 다음 부부가 되고 그 다음은 각자의 직업에서도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두 분 모두 서울대 출신이어서 그런지 프로그램과 신앙생활을 아주 성실하게 하신 덕분에 기간도 짧고 업그레이드도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하다. 물론 본인들 자신은 순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겠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분들은 태황사 근처 연천에 살고 계신 불자님들이다.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젊은 신도들처럼 드라마틱한 변화는 볼 수 없지만, 조금씩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다. 전곡읍내에서 만두집을 하고 계신 불자님은 큰 아들이 결혼하지 않는 것이 항상 걱정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 분은 모든 부처님도 어쩌지 못하는 큰 죄를 지어서 천벌을 받고 있고 도저히 구제할 수 없다고 나왔다. 그래서 프로그램 마지막 사마타에서 모든 부처님이 내려와 그 불자님을 위한 기도를 하는 모습이 나오고 끝났다. 사실 그 불자님이 처음 태황사 아니 오봉사와 인연이 된 것은 젊을 때 아주 큰 병이 들어 병원에서도 못 고친다고 하는 것을 주지스님의 어머니이신 큰 방모님이 침으로 살리신 분이다. 그래서 이 불자님은 오봉사 덕분에 살고 있는 거라 생각하여 그 어떤 곳에도 가지 않고 오봉사를 떠나지 않는다. 생명을 살려주신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주지스님의 업장소멸프로그램도 하신 것이다. 대부분 치유 마지막에 큰 보시 또는 미션을 받는데, 이 불자님은 구제방법이 없기 때문에 미션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불자님은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오봉사에 오셨다. 그러다가 주지스님이 어려운 와중에 사리탑을 다시 세우려고 할 때 기초공사부터 해야 하는데, 그때 이 불자님이 그 기초공사 비용을 시주하셨다. 그 비용도 사실 여러 금융기관에 대출신청을 했는데, 단 한 곳에서만 가능하다고 하여 의정부에 있는 곳까지 가야 해서 내가 모시고 갔다. 그렇게 어렵게 시주를 하자, 그 불자님에게 큰 아들에 대한 걱정이 내려놓아졌다. 그 아들은 여전히 결혼을 하지 않고 공무원으로 살고 있지만, 불자님은 걱정하시지 않는다. 다만 부처님께서 건강을 허락해주시는 때까지 만두집을 운영하면서 본인의 삶을 행복하게 살고자 하고 계신다.

또 한 분은 연세는 많으시지만 참 점잖으신 분이다. 말씀도 조용히 하시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침저녁 예불을 하시고 사마타도 하신다. 사실 이 분은 딱히 걱정이 없으신 분이다. 남편분은 일찍 돌아가셨지만 아드님은 학교 교감이시고 따님도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지스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본인도 프로그램을 해보겠다고 하셔서 시작했다. 그 분은 업장이 없고 지금 하시는대로 꾸준히 기도하시면서 사비다를 하시라고 나왔다. 따로 수계를 받지는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천업보시를 빼놓지 않고 하시고, 때때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주지스님께 상담을 의뢰하여 문제를 해결하곤 하신다. 지금은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법문을 잘 듣지 못하시지만 초하루법회 때는 꼭 빠지지 않고 나오신다.

그리고 여기 연천에도 두 자매분이 프로그램을 하셨다. 언니분은 자녀분들 사이가 좋지 않은 게 고민이셨는데,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니 본인이 큰 아들을 업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업었고 아들 역시 어머니에게 업혀 있다보니, 본인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늘 폐만 끼쳤다. 그래서 불자님에게는 아들을 내려놓도록 했다. 그러자 아들들 사이가 좋아지고 큰 아들도 재혼하여 잘 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큰 아드님은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어머니에게 업혀 있다보니 불자님은 다시 아들을 업게 되고 큰 아들은 또다시 이혼하여 불화가 시작됐다고 한다. 처음에 프로그램을 하셨던 것은 70대이셔서 그나마 사마타도 가능하고 절에 찾아와 스님과 상담도 했는데, 이제는 80대가 한참 지나 거동이 불편하시다 보니 절에는 1년에 한 번 오시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리고 동생분은 딸과 사위를 사고로 잃고 그 손자손녀를 키우고 계셨다. 언니와 함께 전국 장날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시면서 그 외손자손녀를 키우셨는데, 본인이 늙어 더이상 돌보지 못하게 될까봐 항상 걱정이셨고 죽은 딸과 사위를 한 번만 만나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사마타에서 죽은 딸과 사위를 만났고 이건 그냥 기도 속에서 만난 허상이 아니라 진짜 만난 것 같다고 하시면서 그 슬픔과 걱정을 모두 쏟아내신 후로 씩씩하게 사셨다. 지금은 외손자손녀가 어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고 있어 더이상의 걱정은 사라지셨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연천에 살고 계셨던 불자님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는데, 지금은 연이 끊어져 어떻게 살고 계신지는 모르겠다. 프로그램을 할 당시에는 본인의 업장을 찾아냈고, 그 소멸방법도 권유했지만 스스로 프로그램을 종료하시고 오봉사에는 발을 끊으셨다.

그렇지만 멀리서나마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무탈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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