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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치유의 단점

2025년초오랜만에 상담신청이 들어왔다. 예전에 인생치유를 했던 A양이 본인도 다른 사람을 치유해주는 일을 하고 싶다며 우리 일에 합류되었다. 키워드는 우울증과 안 아프게 죽는 법이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문의전화와 홈페이지에 상담신청을 올렸다.하지만 상담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았고, 상담을 했어도 대부분 프로그램은 진행하지 않았다. 그중에 한 40대 여성이 죽고 싶다면서 찾아왔다. 무료상담을 통해 업장이 있음을 확인했고, 사마타 체험을 1회 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어머니 뱃 속 양수 속에서 아무 자극없이 10개월간을 살다가 태어나면 공기라는 자극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울기 시작하고, 배넷저고리를 한참동안 입으면서 자극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은 비단 피부만이 아니다. 어머니 젖, 이유식..

보시는 세상에 나를 던지는 행위다.

우리는 상처받을까봐, 죽을까봐, 버려질까봐 두려워서 나를 세상에 던지지 못한다.우리는 태어나서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오면서 그 환경으로 인한 생각, 말, 행동을 하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내 경험과 상식 안에 살아간다. 그래서 그 경험과 상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자극이 오면 상처받기 싫어서 버림받기 싫어서 움츠리게 된다. 어제는 한 불자님이 전화를 주셨다.연천군에 전화해서 절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우리 절을 알려주셨다고 한다.지금 고민이 있어서 금강경을 읽으면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사정이 있어서 며칠만 쉬고 싶은데 그래도 되느냐는 질문이셨다. 내 대답은고민이 있으면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지 금강경 읽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불자님은 부처님이 몇 분 계시냐..

불교이야기 2025.06.11

지금 참종사와 태황사에 오시는 분들

작년에 100일기도가 끝나갈 때, 열흘을 앞두고 오신 염광스님은 사실 주지스님과는 오랜 인연이 있다. 예전 서원사 시절에 오랫동안 서원사 사무장으로 계시면서 주지스님의 그림자처럼 함께 하셨던 분이다. 지금 내가 그러는 것처럼. 주지스님도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그때도 성황했던 때도 있었고 직원들 급여를 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도 있었는데, 그 모든 세월을 함께 하셨다고 한다. 염광스님의 아버지 유골이 태황사 납골당에 모셔져 있어서 1년에 1~2번은 꼭 찾아오셨는데, 그때마다 주지스님이 안 계신 틈을 타서 방문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 정도를 보내다가 작년에 우연히 100일기도 중에 방문했는데, 그때 정진 중이셨던 보광스님이 이렇게 먼 길을 오셨으니 주지스님을 뵙고 가라는 말에 만류하지 못하고 주..

서원사와 태황사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간다. 학교와 회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절이라는 곳은 그야말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서원사에서도 재벌 회장부터 월세조차도 내기 어려운 사람까지, 80대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대학교수나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부터 초등학교조차 못나온 사람까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나를 처음 서원사에 발을 들여놓게 한 사람은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던 불교출판사의 사장님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얼마안되었을 때 어떤 절에 가보자고 했고, 거기에서 나는 법문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다. 처음이라서 그런지, 내가 어떤 말씀을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그 출판사에는 스님들과 불교신자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큰 딸, 서명스님

이 아이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것도 서러운데, 친할머니를 비롯하여 고모와 작은아버지들까지 어른들끼리 할 얘기를 초등학교 6학년밖에 안 되는 아이에게 해댔으니, 어린 아이가 받았을 충격과 상처가 가히 상상이 안 된다. 그런데다가 아버지는 어린 동생들을 위해서라며, 엄마를 잃은 상처도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덜컥 결혼까지 하시는 바람에 큰딸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린 동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가 생겼다고 좋아라 하지만, 사춘기에 들어선 본인은 도저히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물론, 보호자가 생긴 것이고 누군가가 엄마의 빈 자리를 채워준다는 개념으로 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그것이 엄마라는 자리에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즉,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100일 기도

우리는 2018년 1월에 서울 방배동에 포교당을 개원했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만들어진 인생치유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사람들이 거의 10년 가까이 유지하면서 지탱해왔는데, 2017년부터 서서히 인원이 줄어들더니 2018년에 그나마 남아있던 신도들도 모두 발을 끊었다. 한 부부만 빼고. 2018년은 우리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가까이 있던 스님과 직원도 배신하고 나갔고, 남은 신도들도 비난하면서 떠나갔다. 그런 와중에도 주지스님은 다시 일으키고자 방배동에 강남불교대학이라는 이름의 포교당을 열어 유튜브를 시작하고, 주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전단지와 포스터를 붙이고 불교강의를 시작하셨다. 1년여동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가면서 남긴 상처를 삮히면서도 한편으로는 큰딸에게 도움의 손을 뻗었고 프랑스..

나의 방모 트레이닝 과정들

나는 지금까지 인생치유프로그램 과정을 여러 번 했다.그 이유는 맨 처음에는 심정지 때문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멈춰져서 사마타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시도했으나 너무 바쁘기도 했고 체력적으로도 사마타를 할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가족이다 보니까 소홀했던 점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장애물이 생길 때마다 시도했는데, 그 때마다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었고 조금씩 방모로서의 자질이 갖춰지기는 했다. '방모'란 절 방(坊)자에 어미 모(母)를 써서 스님의 부인을 말하는데, 일본의 스님 부인을 보모리(坊守 り )라고 한 것에서 착안하여 군맹서진스님이 새로 만든 단어다. 따라서 군맹서진스님은 방모란 모든 신도들의 어머니로서 그들의 아픈 인생을 어루만져 줄 수 있어..

나와 내 가족의 전생이야기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허무맹랑하며 증명되지 않은 것이지만, 재미삼아 적어보려고 한다.내가 한참 방모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 과정 중에 나와 첫째딸의 사마타에서 나온 이야기다.어떻게 이런 황당한 스토리가 만들어졌는지는 다른 섹터에서 또 나열하겠지만, 지금은 종합된 이야기를 적겠다.모든 중생들은 자신의 업과 업보에 따라 윤회를 거듭하면서 태어나지만, 나는 특별하게 처음부터 지금의 나로 태어나기 직전까지 색계의 신으로 태어나 윤회하지 않고 계속 색계의 신이었다고 한다. 불교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천상의 신들은 항상 원하는 것이 모두 만족된 삶을 살기 때문에, 고통없이 항상 평온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그런 심심하고 따분한 삶을 억겁동안 살았고 가끔씩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면서 부러워 ..

쓰러졌다

2010년 11월 7일이 날은 내 인생에 없는 날이다.​점심식사 이후 신도들과 함께 차담하는 모임이 있었다. 그래서 안채 부엌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내 의식은 그 다음날 병원에서 깨어났다.​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들으니, 차담하려고 주지스님과 서원사 식구들 그리고 신도들이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안 나오자 각비스님 부인이 나를 부르러 안채에 들어갔는데 내가 부엌에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시아버지이신 효란큰스님과 시어머니도 함께 서원사에서 살고 있었는데, 시어머니와 주지스님은 수지침으로 사람들을 치유할 줄 알기 때문에, 내 손과 발에서 사혈을 시도했으나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고, 옆에서는 119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서원사에서 종합병원인 대한병원은 직선거리로 1km도 채 떨어져있지 ..

에필로그

2010년에 오봉사(태황사 전신)에 올라와 지금 2025년이 되었다. 중학생이었던 첫째는 스님이 되었고 지금은 일본의 불교대학에서 불교공부를 하면서 방학 때마다 한국에 와서 태황사를 돌보고 있고, 둘째는 삼수를 해서 아직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셋째는 군대에 가려고 입영준비중이고, 막내는 외고에 입학하여 기숙사에 들어가 있다. 현재상태로 보면, 다른 집에 비해 아이들이 성장이 느리고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 같지만, 다른 집에 비해 아픔이 컸고 그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길었던 것일 뿐. 특히 올해부터는 아이들 모두 자기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막내를 제외한 위의 세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데다가 생모로부터 물려받은 업장(인생의 병)이 유별나게 깊어서 그것이 아이..